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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이몽슬 2021. 7. 1. 11:49

이미지 출처: yes24

 

뉴스는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요소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뉴스를 보고 듣고 또 뉴스에 대해 얘기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고자 매일 뉴스 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왜 뉴스를 봐야 하고 어떻게 봐야 하는지 깊이 탐구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왜 뉴스를 봐야하고 뉴스를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각 분야별로 설명한다.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리티, 재난, 소비자 정보 뉴스로 나눠 각 분야를 접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생각 및 감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은 너무나도 공감이 돼서 매우 흥미로웠다.


교육에 대해 별의별 소리를 떠들어대면서도, 현대사회는 자신의 구성원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을 검토하는 데 참으로 무심하다.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간에, 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교육은 방송 화면과 전파를 통해 이뤄진다. 우리는 태어나서 고작 18년 남짓 교실에 갇혀 보호받을 뿐, 나머지 인생은 사실상 어떤 제도권 교육기관보다도 더 커다란 영향력을 무한정 행사하는 뉴스라는 독립체의 감독 아래에서 보낸다. 일단 공식적인 교육과정이 끝나면 뉴스가 선생님이다. 뉴스는 공적인 삶의 풍조를 조성하고 우리 각자의 테두리 너머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힘이다. 뉴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만드는 으뜸가는 창조자다.
pg. 13

저자는 뉴스야말로 우리 인생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선생님이라고 한다. 

 

우리가 접해보지 못했던 세상을 전달하는 것은 뉴스이고, 뉴스를 통해 어떠한 나라 혹은 사람 등에 대한 생각이 잡힌다.

 

생각해보면 뉴스에서 한 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도를 한다면 그 나라를 접해보지 못했던 나는 자연스레 그 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형성할 것 같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pg. 32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정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흔히들 tmi 라고 많이 얘기한다. Too much information, 즉 너무 많은 정보, 필요 이상의 정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더 많은 사실을 아는 것보다 그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뉴스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대단히 난감한 질문에 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는 빼어난 능력은 없다. 뉴스는 어떤 이야기를 조명하고 어떤 이야기를 빼버릴지 선택하면서 단지 현실을 선택적으로 빚어낼 뿐이다.
pg. 51


뉴스를 읽을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뉴스가 그 사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뉴스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야기를 가미하며 선택적으로 보도한다.


하지만 이제 언론은, 한 인간을 상상력도 없고 창조적이지도 않고 마음도 교활한데 그와 동시에 얻어들은 건 무척이나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헛똑똑이는 과거에는 오직 천재들만이 알 수 있었던 것들을 일상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얼간이다. 그는 이전 세대가 결코 걱정해본 적 없던 특성을 지닌 절망적인 결합체다.
pg. 83

우리가 만약 뉴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정보는 많지만 자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오직 천재들만이 알 수 있었던 것을 현대인은 일상적으로 쉽게 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주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저자의 말처럼, 비록 많은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현대인들은 생각하지 않는 얼간이일 수도 있다.

 


시샘이라는 감정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그 대상이 모호하며 공포심까지 동반할 때가 아주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특정한 개인에 대해 질투할 때 그의 모든 것을 두고 질투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차분히 살펴볼 시간을 갖는다면, 그들이 이룬 것 중 아주 작은 부분만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으로 진화하는 데 진정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런 성취를 거둘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잘 모를 때 오히려 타인을 가장 시기하게 된다.
pg. 197

 

셀러브리티에 관한 얘기다.

 

SNS를 통해 우리는 셀럽의 삶을 쉽게 접할 수 있고 그들의 삶을 동경한다.

 

그들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었는지, 또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등 그들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의 삶을 살펴볼 때 은연중에 시샘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특히, 나와 같은 나이인 연예인이 좋은 옷, 차, 집 등을 갖고 있을 때 항상 나는 이때까지 무얼 했는지 자괴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셀러브리티의 삶 중에 아주 작은 부분만이 우리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즉, 그들이 이뤄낸 업적을 보고 그 셀럽의 모습 전체를 동경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실패하길 바라고 그들의 실수에 대해 험담하길 즐기는 건 결국 무척이나 슬픈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주목받지 못해 화가 나 있고, 그래서 우리 몫을 빼앗아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단죄함으로써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좌절된 야망이 우리를 실패자로, 다른 이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으로 만든다.
pg. 210

우리는 때로 연예인들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다.

 

잘나가는 연예인의 오점이 발견될 때 사람들은 신나서 그러한 이슈에 대해 얘기한다.

 

나 또한 이런 가십거리들에 대해 듣는 걸 매우 좋아했고 또 많이 나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단편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들의 삶의 내면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깐깐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바라는 삶을 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비극적인 사건을 보도할 때, 뉴스는 끔찍한 행동을 특정한 인물의 고유한 행동으로 보이도록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유용한 결론을 끌어내는 데는 주저한다. 그 결론이란 우리가 끔찍한 행동으로부터 머리카락 한 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적절한 방식으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될 때, 우리는 성찰하는 태도로 성숙한 슬픔에 잠길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종의 다른 구성원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생각보다 더 깊이 연루되어 있다. 심각한 범죄 기록이 없는 건 대체로 운이 좋거나 환경이 좋아서일 뿐, 본성이 타락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pg. 225

뉴스는 비극적인 사건을 특정한 인물의 고유한 행동으로 보이게끔 보도한다고 한다. 

 

뉴스는 한 사람을 살해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 다루지, 그 상황 속에서 우리도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전제를 배제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범죄 행위를 합리화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또한 범죄자의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어떠한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는 전제를 생각해야 한다.

 

희대의 악마라고 불리는 범죄자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저질렀던 잔혹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만 생각나지 그들의 배경은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다.

 

그들과 우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성경에서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가 가진 한정된 시간에 견주어보면 우리가 걱정하는 몇몇 문제들은 실로 무가치한 것이라는 사실이 두드러지고, 우리의 자아도취적이고 경박한 성향 또한 우리가 가진 보다 진지하고 단호한 면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사고에 관한 뉴스는, 삶이란 게 이렇게나 취약하고 우리 앞에 몇십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게 결코 보장될 수 없다면, 오후 내내 사랑하는 사람과 말다툼을 벌이고 조그만 잘못을 저지른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려 하거나 변변찮은 한직에 있다는 이유로 진정한 재능을 가진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pg. 233

갑자기 일어난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진다.

 

언제 어떻게 우리한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밀접한 연관성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한다.

 

이런 사건을 들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 및 마음가짐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공감이 많이 된다.

 

사고는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이를 통해 삶은 취약하고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고 하루하루를 조금 더 아끼며 소중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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