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5]
2022.06.23 밤 11시경 친할아버지께서 소천하셨다.
친할아버지께서는 올해 초 요양병원에 들어가셨고 학기 중이었던 나는 바쁘기도 바빴고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못 가는 상황 때문에 할아버지 소식을 계속해서 카톡으로만 업데이트 받았다. “산소호흡기 끼셨다” “코로나 걸리셨다” 등등 계속해서 위급했던 고비를 넘기시면서 그렇게 버티시다가 결국 그저께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 인천 집을 떠나 요양병원으로 가게 됐을 때 모두가 이제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할아버지 짐을 정리하고 방을 치웠는데 할아버지의 짐이 한 박스가 채 안 찼다고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교제 나눴던 기억이 거의 없다. 매번 한국에 와서 인천 할머니댁에 머물렀을 때 할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때도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워낙 과묵하셔서 항상 날 마주치면 헛기침을 내시면서 방에 들어가시는 기억뿐이다. 살갑게 할아버지~ 하면서 애교를 부리기엔 나에겐 너무 어려웠던 분이셨다.
아빠는 우리한테는 최고의 아빠지만 사람 자체는 과묵한 부분이 있으신데 그런 과묵함이 할아버지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아빠가 점점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할아버지와 비슷해지는 부분이 많다. 엄마가 항상 아빠가 할아버지랑 점점 비슷해진다고 걱정 어린 한소리를 하신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서로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화가 단절된 부자였다. 작은 아빠도 다르지 않다. 작은 아빠와 할아버지도 대화가 정말 없었다. 내가 살면서 할아버지께서 얘기하셨던 걸 들었던 게 열 마디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할머니한테 구박 받는 모습만 기억난다. 할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 많이 엄하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할머니의 생존력이 할아버지보다 많이 강해졌을 때부터 할머니가 집의 실세가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손녀인 내가 봤을 때도 많이 답답하신 부분이 있긴 해서.. 자녀들에게도 아버지의 위엄이 없어진듯해 보였다. 많이 안쓰러웠고 마음이 아프긴 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시집살이를 매우 매우 심하게 당하셨다. 어쩌면 이런 집구석에서 내 편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할아버지와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엄마는 할아버지를 굉장히 좋아하셨고 그 철옹성 같은 할아버지도 본인의 딸과 아들보다도 엄마를 더 좋아하는 듯해 보였다 (물론 순전히 내 시선에서.. 그렇게 보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돌아가는 모든 것을 못마땅하셨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할아버지에게 몰래 용돈을 손에 쥐어주고 선물을 할아버지 서랍에 꽁꽁 숨겨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가 할아버지를 잃고 나서 엄마가 참 많이 힘들어하셨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장례식이 생애 처음이었던 나는 입관부터 발인까지 수많은 생각, 만감이 교차했다. 할아버지와 교류가 없었던 터라 할아버지의 죽음이 슬프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아 돌아가셨구나, 때가 돼서 돌아가셨구나’ 이 정도였다. 그래서 출근도 할 생각이었고 퇴근하면 합류할 생각이었다. 인턴 5일 차에 하루 빠지는 게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하지만 엄마가 회사 하루 빼고 아침부터 장례식에 함께하라고 강권하셔서 마지못해 빼고 참여했다.
할아버지가 목요일 밤에 돌아가셔서 하루 먹고 들어가서 3일장이라 해도 금요일 하루 꼬박 장례식 하고 토요일 오전에 발인하는 일정이었다. 아침부터 장례식장에 가서 옷 갈아입고 조문객 받을 준비를 했다. 사촌오빠랑 같이 앞에서 조의금을 받는 역할을 맡게 돼서 하루 종일 정신없었다. 방명록 쓰는 것부터 일일이 인사드리고 누구 손님인지 안내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냥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다가 오후 3시경 입관을 하게 됐다. 입관.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시간. 염습이 되어있는 할아버지께서는 참 평온해 보이셨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꼭 감고 계신 모습. 할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봐도 덤덤했다. 할아버지를 이렇게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건 할아버지께서는 큰고모, 작은 고모, 아빠, 작은 아빠의 아빠였다는 것. 할아버지의 누워계신 모습을 보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깊은 탄식과 봇물 터지듯 오열하시는 가족분들, 특히 우리 엄마와 아빠가 무너지시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도 눈물이 나왔고, 모두가 슬픔에 잠겼던 순간이었다. 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보다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인해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마음이 더 아려왔던 거 같다.
입관식을 마치고 다시 장례식장에 올라왔을 때 오전과는 마음가짐이 확연히 달라졌고 허례허식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던 장례식이 누군가에게는 고인에게 진심 어린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만약 우리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더라면 장례식을 일주일 동안 해도 모자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계속 지루해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 가서 일했지’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부모님의 마음을 너무 배려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어쨌든 하루 종일 밤새면서 조문객 받고 있으려니까 진짜 너무 피곤했다. 오랜만에 뵙는 얼굴들도 많고 반가운 얼굴들도 볼 수 있어서 나름 좋긴 했다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몸이 너무 피곤했다. 쪽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발인하러 대가족이 버스타고 움직였다. 우리는 호상이라 그런지 가족들 대부분 발인 때는 나름 덤덤했었는데 발인하는 장소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그리고 기다림의 연속.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정말 오랜만에 대가족 모두가 다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데 이 시간이 참 귀하고 좋았다. 오랜만에 본 사촌오빠와 사촌동생들 소식도 듣게 됐고 선아언니 뱃속에 있는 딸 랑이와도 인사를 나누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느꼈던 점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슬하에 여러 자녀를 두는 것이 어쩌면 이 땅에서 뿌릴 수 있는 최고의 씨앗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어려움을 같이 극복할 수 있는 형제자매가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다. 우리 아빠네도 4남매라 서로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았을 것 같고 안심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를 천국에서 만나면 그때는 반갑게 인사해주시리라 믿고 이 땅에서 정말 잘 살다가 천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더 더 더 더 행복하게 잘 살 거다:)